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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에세이] 연리지

삼척시사회복지협의회 0 6,947 2013.01.24 11:13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무들이 서로 가지가 얽히면서 함께 성장하는 나무라고 한다. 내가 체험한 봉사는 이 연리지라는 나무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는 것 같다. 

2010년 여름,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암이라는 건 막연하게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왔고 주변에 아픈 분도 안 계셨던 탓에 엄마의 암 선고는 내게 있어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나는 매일 울면서 잠들었고, 모두를 원망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엄마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 모든 상황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집안사정도 급속도로 기울어졌다. 부모님은 힘든 가정형편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지만 인문계보다 배가 비싼 예고의 학비 때문에 부담은 점점 커졌다. 결국 전학까지 생각하게 됐을 때 다행히 원클릭이라는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학비를 지원 받게 되었다. 학비를 지원받게 되자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그때 나를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받은 도움만큼,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도움, 물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내가 받은 도움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나눌 수 있는 것들은 나누고 싶었다. 그 해 겨울방학부터 나는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를 하게 된 곳은 일산의 지역아동센터였다. 봉사 첫날, 담당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셨는데 그 중 가장 강조하셨던 것은 아이들에게 적당히 엄하게 하되 손찌검을 하거나 벌을 주지 말 것과 엄마 아빠라는 호칭대신 ‘보호자님’이라는 호칭을 쓰라는 것이었다. 지역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편부모 가정 혹은 조손가정이 많기 때문에 혹시 엄마 아빠라는 말을 사용하면 부모님이 안 계신 아이들에게 크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시간 약속을 꼭 지켜줄 것을 당부하셨다. 

내가 했던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학년 학생들에게 피아노레슨을 해주고 수학문제를 풀어주는 일이었다. 순탄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특히 고학년 남자아이들은 막 사춘기가 찾아올 무렵이었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했고 나는 좀처럼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나는 점점 시간 때우기 식으로 봉사에 임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의욕과 다짐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때 예정된 시간보다 10분정도 빨리 도착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담당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나와 함께 있을 때 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친밀감의 차이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일주일전과 지금이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아이들이 아닌 내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처음 봉사를 시작하던 날, 선생님이 당부하셨던 것들이 떠올랐다. 그 당부 속에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배려가 있었다. 엄마 아빠 대신 보호자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던 것도 아이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벌을 주지 말라고 했던 것 또한 아이들을 많이 사랑으로 보듬어달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봉사가 끝나고 나는 선생님께 명단을 받아 아이들의 이름을 완벽하게 외웠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세세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승주라는 아이는 체르니 치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소곡집을 치는건 흥미있어 했고, 혜린이는 수학은 싫어했지만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다. 영훈이는 수학문제 푸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앞부분 하나를 설명해주면 그 뒤부터는 문제를 잘 풀었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배려하자 아이들은 곧 경계를 서서히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쉽게 마음을 열어 주었다.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안하던 아이들은 곧 곧잘 대답을 해왔고 또 어느 순간 말을 먼저 붙여올 때도 있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일상생활에서의 변화가 생겼다. 나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사소한 배려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또 시간을 지키며 책임감도 배우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정말 귀 기울이게 되고 배려하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엄마의 병과 함께 찾아왔던 우울과 절망감도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었다. 

엄마는 유방암 수술을 받고 나서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전에 다니던 봉사센터에 꾸준히 봉사를 다녔다. 엄마는 아프기 전부터 나에게 봉사를 권했지만 나는 매일 다음으로 미루며 봉사를 좀처럼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수술을 받고 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봉사를 나가는 엄마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왜 몸이 아픈데 봉사를 나가는 거냐며 엄마한테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봉사를 통해 스스로의 아픔을 극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봉사를 시작한 후로 나는 왜 엄마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다녔던 것인지, 봉사가 얼마나 행복한 변화인지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봉사를 하게 된 후 나는 정말 많은 것들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주는 사람만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주고 또 부족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진다. 

만약 봉사를 하려는 친구들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봉사를 받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공부나 피아노 설거지 등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부터 아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또 함께 변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과, 사소한 것이라도 아이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내가 먼저 바뀌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아이들이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변한다. 그렇게 함께 변화하는 것이 봉사의 참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요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게도 스펙쌓기에 급급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친구들은 대부분 정말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서류상 봉사시간을 채우겠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 보인다. 그런 봉사는 봉사를 받는 사람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나에게도 좋지 않다. 몸만 힘들고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런 학생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봉사란 한 쪽이 일방적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또 우러나서 봉사를 시작했지만 처음 봉사를 시작했을 땐 아이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에 급급했다. 그건 진정한 봉사가 아니었다. 

봉사는 그 후부터 지금까지 2주에 한 번 토요일마다 꾸준히 하고 있다. 아이들은 늘 내가 주는 것보다 많은 것을 돌려준다. 나는 늘 감사함과 배려를 배우고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봉사는 대단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재능도 필요 없다. 시작은 진정으로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다. 엄마는 수술 후 몸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봉사를 나간다. 나는 토요일에 사정이 생겨 봉사에 못 가게 되면 그 다음주라도 꼭 봉사를 간다. 몸은 좀 힘들지만, 다녀오고 나면 뿌듯함과 행복감은 배가 된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고 싶다. 

봉사는 함께 변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서로 다른 뿌리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함께 변하며 성장하는 연리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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